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진심으로 믿습니까? 우리는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 주변의 일들을 보면서 ‘주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믿음인가요? 때때로 환란이나 고난이 올 때는 주님이 진짜로 계신지 의심도 합니다. 그리고 그 기간이 길어지면 또는 사건의 정도가 이성이나 지성으로 납득이 안 되면 주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것이 믿음인가요?
여러분 하나님 예수님이 궁금하여 성경을 읽지만 구원의 믿음을 안 믿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믿음은 이성과 지식의 한계를 넘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고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 지식이 해박해도 마음에 감동을 주지 않으면 믿음이 머무를 자리는 없습니다. 세계적인 조직신학자 루이스 벌코프 박사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믿음이란 성령께서 마음 속에 일으키신 복음의 진리에 대한 확신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마음에서 의뢰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심어 준 확인 입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미국의 뉴욕까지 비행기 타고 14시간을 갑니다. 우리는 아무 걱정 없이 비행기에 타고 잠도 자고 영화도 보고 밥도 먹습니다. 우리는 비행기 조종사가 무사히 안전하게 비행할 것이라고 마음 속으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잘못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 이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폭풍이 있고, 안개가 많이 끼고 눈이 많이 쌓인 날씨에는 어쩝니까? 마음 한 구석에 근심과 걱정이 있습니다. 그래도 조종사를 믿고 의지하는 목숨까지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를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께 의지하며 목숨까지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그 분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승객이 조종사의 비행기 조정 실력을 믿듯이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신 것과 우리가 죄악 속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평강케 하여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승객은 안전 수칙을 잘 지켜야 하고,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과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조종사와 승객은 14 시간의 비행을 같이 하며,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영어성경에서 believe 이며, 히브리어로는 '아만' aman입니다. 그런데 이 '아만'은 세우다, 지탱하다, 신실하다, 확실하다, 믿다 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우리들이 기도할 때마다 하는 '아멘'과 같은 말입니다. '아멘'은 헬라어 발음입니다. 믿음의 아멘은 ‘~에 달라 붙다’ ‘밀착하다’ ‘의뢰하다’ ‘의지하다’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의지하고 의뢰하는 것입니다.
조종사에게 안전하게 비행할 것을 의지하고 조종사에게 의뢰한 것입니다. 주님께 우리의 삶을 의지하고 의뢰한 것입니다. 로마서 10:9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습니다. 믿음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은 전체 인격을 말 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하였습니다(마12:34). 성경에서는 대부분 ‘마음’을 단순히 감정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의 중심 인격의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 사람의 감정이나 지성만이 아닌 그 사람 인격 전체 그의 존재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총체성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성경 지식이 많은 사람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것처럼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의 이해의 문제가 아닙니다.
에베소서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합니다. 내 속에 있는 나의 마음이지만 이것이 나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오셔서 변화를 주셔야 합니다. 변화의 선물을 주셔야 합니다. 지식으로 머리에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이 나의 마음을 변하게 성령님께서 움직여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강해’의 저자 D.M. 로이드 존슨 박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지성적인 것이 아니라 그 인격의 가장 깊은 내밀한 곳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어떠했습니까? 그들이 온전히 예수님을 신뢰하고 의지함으로 믿었을까요? 그들에게 소위 말하는 마음 속 깊이 뿌리내린 믿음이 있었나요? 그렇다고 그들에게 믿음 없는 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요? 왜 성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을 까요? 성경 인물들이 강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르고 순종하며, 예수님께 순종하여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하셔야 하는데, 왜 성경 인물들의 약한 모습을 말씀하실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시면서 낮고 비천하고 작은 자로 오셔서 죽으신 것과 같은 맥락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신 것은 우리 인간을 위하여 그리하신 것입니다. 성경 인물들의 연약한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위로를 받고 또 더 큰 믿음으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고 항상 지켜 주시며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고난에 감사기도가 나오는 지요?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성경에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고, 환난 중에도 감사하라는 말씀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도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된 상황에서도 감사 기도를 합니다(단6:10). 로마서 5:3b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 시편 138편 7절에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라고 하였습니다. 환난과 고난의 시간에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보아야 합니다. 고난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영상 설교 10 '끝까지 붙들어 주시는 주님' 중에서 ]
감사합니다
MD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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