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는 배필’은 영어로 suitable helper, 히브리어는 ‘에제르 케네그도ezer kenegdo’인데, ‘도움’이라는 뜻의 ‘에제르’와 ‘그와 마주보고 서 있는 것 같다’는 뜻의 ‘케네그도’가 합친 합성어입니다. 전자는 ‘돕는’으로, 후자는 ‘배필’로 번역하였다. ‘돕는’의 히브리어 ‘에제르’에는 ‘도움, 둘러싸다, 방어하다. 울타리를 두르다’의 의미가 포함되며,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을 돕는 자로서 하나님께 대하여 주로 사용된 용어입니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그런 돕는 자가 아니라 없으면 쓰러질 수 밖에 없는 위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벌써 쓰러졌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도움이 없으면 벌써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 절대적 돕는 자입니다. ‘돕다'라는 뜻이 "하나님이 그의 궁핍한 백성을 구원하는 데 사용하는 단어"로 '우월성'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시편 121편, 히 13:6). 즉, 자신을 돕는 사람이 오히려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우월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아담의 모자라는 부분만 도와 준다면 굳이 사람을 만들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려면 상대방보다 더 잘하고 우월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돕는 배필’은 그냥 지원하고 보충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또한 ‘에제르’는 영어 단어 ‘에센셜’(essential)의 어근이기도 합니다. 에센셜은 ‘필수적인, 극히 중요한, 본질적인’이란 뜻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제르 케네그도’로 불리는 돕는 배필은 부수적 조력자나 도우미가 아닌 것입니다. '에제르’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 상호 주고받는 기능적 보완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돕는’의 히브리어 어원의 의미에 ‘둘러싸다, 울타리를 두르다’ 의 의미가 있습니다. 돕는 배필은 서로 울타리를 쳐 주는 사람인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를 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울타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하고 울타리를 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영어에서 Suitable 이라는 ‘알맞은, 최적의’라는 표현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최상의 울타리인 것입니다. ‘배필’의 ‘네그도’의 어원은 ‘네제드’ ‘나가드’로 ‘정면에 두다, '서로에게 아주 잘 맞는 짝'(suitable)이란 뜻입니다. 즉, 아주 잘 맞는 사람이 ‘배필’인 것입니다. 나와 최상으로 잘 맞는 사람과 울타리를 치는 것이 돕는 배필이요 가정인 것입니다. 즉, 아담에게는 하와가, 하와에게는 아담이 그런 돕는 배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돕는 배필이란 서로 마주보는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움이 되는, 그리고 가장 최적의 도움을 주는 존재인 것입니다. 특히, 아내는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남자로부터 지으시고 보내주신 인생의 가장 귀한 선물인 것입니다. 남편 또한 아내를 위하여 미리 예비하신 인생의 가장 귀한 돕는 배필인 것입니다. 아울러, 부부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모든 것의 주관자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돕는 배필의 필요성과 돕는 배필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 이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돕는 배필인 하와를 만드실 때 아담의 갈빗대로 지으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처럼 흙으로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2:21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이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하셨습니다. 하와는 아담의 갈빗대로 만드셨다고 합니다. 그냥 다른 흙으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왜 굳이 그러셨을까요? 아담과 하와는 그냥 남자와 여자가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입니다. 성경 구절에 남자와 여자가 같이 나오는 곳이 창세기 1:27과 2:23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는 각각 ‘자카르’와 ‘네케바’로 표현하지만 아담인 남자와 그 갈빗대로 지음 받은 여자는 ‘이쉬’와 ‘잇샤’로 표현합니다. 즉 그냥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입니다. 같은 한 몸으로 지음을 받은, 같은 DNA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명언을 하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합니다. 그리고 ‘여자’라고 부르겠다고 말합니다. 여자라는 명칭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아담이 한 것입니다. 이는 이미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권한입니다.
좀 전에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아내’는 내 뼈요 내 살입니다. 한 몸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잠시 떨어져 살아왔을 뿐입니다. 서로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결혼으로 한 몸이 되고 이제는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지만 그 동안 내 주관대로, 내 뜻대로 살다가 이제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혼입니다. 가정입니다. 한자어 공부 잠깐 할까요? 남편(男便)이 한자어로 남자 남, 그리고 편할 편입니다. 편한 남자 입니다. 그러면 남편과 함께하는 여자는 아내가 아니라 ‘편한 여자’, ‘여편(女便)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에 ‘여편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혼한 여자를 낮추는 말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여편’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입니다. 같은 DNA, 한 몸이니까 편할 수 밖에요. 부부는 편한 남자, 편한 여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관계인 것입니다. 언제 편안합니까? 주님 안에 있을 때가 가장 평안 합니다. 주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진 부부, 항상 주님 안에 있는 부부가 가장 편한 남자, 가장 편한 여자인 것입니다.
[영상설교 5 '아담도 돕는 배필입니다' 중에서]
감사합니다
MD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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