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땅 끝에서부터
말씀: 시편 61:2 ‘내 마음이 약해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영적인 의미의 ‘땅끝’은 앞서 말씀드린 ‘땅끝에 있는 모든 사람들’ 처럼 ‘모두, 전부’의 의미와 함께 ‘절박함’을 의미도 있습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땅끝’, 더 이상 물러 설수가 없는 ‘땅끝’입니다. 시편 61:2에서 다윗 왕은 ‘내 마음이 약해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하며 절규하며 간절히 구합니다. 61편은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아들인 압살롬이 반역과 배신을 일으켜 절박한 상황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기도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경외하는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경고한 망대라고 합니다. 주께서 기업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하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땅끝에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찬양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땅끝’에서 항상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또한, 삼손은 어떻습니까?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라고 주신 생명과 능력으로 블레셋 사람들을 여러 차례 물리쳤지만 여인들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여인의 미혹으로 빼앗기고 결국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눈이 빠지고 놋줄로 묶여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박한 땅 끝에서 삼손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이번 한번만 강하게 해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원수를 갚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어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다고 합니다.
그럼, 예수님의 ‘땅끝’은 어디일까요? 십자가가 예수님의 땅끝입니다. 예수님은 거기서 살아서 내려올 수 없었고 아무도 십자가에 달린 그분을 도울 수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7:46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며 크게 소리지르십니다. 이 말은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버리셨습니다. 그 곳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삼 일 후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셔서 온 세상의 구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죄인을 용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땅끝’ 기도가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땅끝은 어디인가요? 여러분들의 땅끝은 어디인가요?
우리의 ‘땅끝’은 하나님에게는 위대하고도 새로운 시작입니다. 더 이상 가능성이 없는 ‘땅끝’에서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땅 끝에서’ 주님께 간구함은 기도하는 사람의 절박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절박함에 이상한 데로 가기도 하지만 우리 믿는 하나님의 자녀는 오직 주님입니다. 오직 기도뿐입니다.
[영상 설교 46 '땅 끝까지, 세상 끝날까지'] 중에서
감사합니다
MDMS
'1분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온전히 맡김 (0) | 2022.02.25 |
---|---|
キリストの言葉が豊かに住む人生 (0) | 2022.02.19 |
육체의 일 (0) | 2022.02.11 |
Giảng luậu: CHẾT để SỐNG (0) | 2022.02.05 |
은혜와 순종 (0) | 2022.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