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는 이유로는
첫째,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둘째, 복음은 구원을 가져옵니다
셋째,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방식입니다
넷째, 그 복음은 능력있는 복음입니다.
다섯 번째,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복음입니다.
오늘은 먼저, 여섯 번째 이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오늘의 말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하였습니다. 여기의 ‘나타남(계시)’를 떠나서는 전혀 기독교가 있을 수 없습니다. 복음의 의에 대한 하나님의 방식이 나타남이라고 말할 때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하박국2장4절에서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 의 말씀을 인용하였으며, 로마서 3장 21에서 ‘이제는 율법 외에는 행위로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라며 다시 얘기합니다. 다시 4장에서 전체를 할애하여 이 복음이 아브라함 시대에도 알려졌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을 의롭다 하신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로마서 16:25-26 와 에베소서 3:3-6 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일곱 번째 이유입니다.
이는 계시의 내용에 대한 것으로 ‘하나님이 의’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를 얘기할 때 먼저 하나님의 속성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의의 속성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지신 성품의 속성들 중 하나가 그의 영구하고 영원한 의입니다.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의,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의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속한 의로서 의는 하나님께 열납될 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 안에 있는 의는 사람이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의 요청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열납될 만하도록 자신을 다룬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사람이 지금 하나님 자신을 닮아 있어 하나님께 열납될 만하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즐거워하는 것은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람이 의로움을 계속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과 율법을 대치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복음은 율법을 세웁니다.
기독교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과 목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께 열납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면전에 설 수 있게 하는 데 있습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 의롭게 되며 우리로 하나님의 면전에 의를 가지고 설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한 의’라는 의미는 의가 하나님에 의해서 마련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제공된 의라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 들어오신 후 율법에 대하여 완전한 순종을 드렸습니다. 모든 죄와 모든 죄악에 대해서 선고하는 율법의 모든 형벌을 다 처리하셨습니다. 그는 여러분과 저의 죄책을 스스로 짊어지고 형벌을 당하셨습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바로 그러한 일을 하라고 그리스도를 보내셨다고 공표합니다. 하나님의 구원방식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의를 지금 주신다는 데 있습니다. 이는 로마서3장21절에서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빌립보서3:9에서도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을 때만이 하나님의 면전에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주신 이 의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깃입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다음으로 여덟 번째 이유로는
복음은 이 의가 우리의 것이 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길을 통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으로’라는 이 표현은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구원을 결정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또한 믿음이 우리가 구원받을 조건으로 요구되는 것이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사도는 율법주의적인 모든 것을 반대하는 것으로 믿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적이란 율법을 지킴으로써 자신을 의롭게 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정 반대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그 정반대입니다. 믿음은 내 공로면 충분하다고 말하도록 하는 사람 속에 있는 모든 상황을 부정하고 기각합니다. 참된 믿음의 가치를 밝히려면 자기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배제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의를 구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단순히 우리의 의를 구성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를 의롭다 함을 얻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라는 말은 ‘구약의 믿음에서 신약의 믿음으로’ ‘약한 믿음에서 강한 믿음으로’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라는 말을 통하여 단순히 믿음 하나만을 강조하고 듯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가 우리의 믿음에 나타내 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은 믿음을 가진 사람만입니다. 믿음의 선물을 가진 사람만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보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즐거워합니다
감사합니다
MD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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