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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말씀

예배의 삶

제목: 예배의 삶

말씀: 예레미야 7:3-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살게 하리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4절에서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세 번씩이나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물론 하나님께서 이미 다윗에게 당신의 말씀으로 시온과 예루살렘의 안전을 보증하셨고, 또한 다윗과 그 후손에게 영원한 나라를 약속하셨으며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대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곳에 두며 내 눈길과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왕상 9:3)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이곳은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얘기하는 유다인들에게 ‘거짓말’이라고 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앞서 3절에서 미리 말씀하시기를 ‘길과 행위가 바른 삶’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길과 행위에 바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도 않으면서 성전에 와서는 거룩한 척 예배드리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의 삶을 전혀 그리스도인 답지 않게 살아오면서 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드린다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거짓말이라고 하십니다.

 

창세기의 가인과 아벨 형제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성경 역사 최초의 살인 사건입니다. 그것도 형제지간에 살인이 자행된 끔찍한 사건입니다. 왜 형은 동생을 죽였지요?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 형인 가인의 제사는 안 받고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습니다. 이에 화가 나서 동생을 죽인 것입니다. 창세기4: 3-5에서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기’ 하십니다. 가인이 드린 것은 안 받으시고 아벨이 드린 것은 받은 것에 대하여 학자들이 여러 학설을 이야기 하지만 정확한 것은 하나님 만 아실 것입니다. 여러가지 학설 중에 오늘의 본문과 관련하여 말씀드리면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입니다.

 

먼저, 여러분 모두 함께 예배드리는데 하나님께서 내 옆 사람 예배는 받으시고 내 예배는 안 받으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왜 나의 예배를 안 받으시나 생각하고 주님께 여쭈어 보고 돌이켜 회개할 것은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가인처럼 안색이 변하도록 화를 낼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1:26에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역대하33:12과 13절에서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하십니다. 이 말씀은 유다왕 므낫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자 앗수르 군대가 므낫세 왕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가게 됩니다. 이에 므낫세가 하나님께 겸손히 회개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앞서 가인의 상황에 필요한 것은 자신을 돌아보며 겸손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회개할 것, 자신의 죄악됨을 아뢰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를 드리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 한테 왜 이러세요’ ‘왜 제 예배는 안 받으세요’하며 따지고 화낼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시는 고난과 시험에 따지며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오직 겸손히 기도하며 간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러면 왜 가인의 제사는 안 받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을까요? 여러가지 학설과 주장 중에서 오늘 말씀드리려는 것은 가인의 삶은 믿음의 삶이 아니었고 아벨의 삶은 믿음의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말씀에 ‘가인과 그의 제물’ 그리고 ‘아벨과 그의 제물’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가인의 삶과 그의 제물’ ‘아벨의 삶과 그의 제물’ 로 해석합니다. 물론 제물에도 차이가 있다고 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성경 문구 상으로는 분명히 있습니다. 오늘 드리는 말씀은 제물이 아닌 가인의 삶과 아벨의 삶입니다. 문맥상 세상에서의 삶이 아벨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며 예배를 드리지만, 가인은 그렇지 못한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예를 들어 말씀드린다면,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이라면 고시원에 들어가서 밤낮 책과 씨름하며 지내도 될까 말까 하는데 허구 한날 친구 만나서 술 먹고 클럽 다니면서 그래도 법관 되겠다고 사법 시험 본다면 합격하겠습니까? 세상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삶을 살다가 주일날 예배만 드리는 삶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삶은 주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주일은 그냥 별개의 한 날이 아닙니다. 주일은 주중의 연장입니다. 주일의 예배는 그간 세상 속에서 살아온 삶의 결실입니다. 그 소산 즉 열매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살다가 주일 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며 ‘주여 주여’ 하는 자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7:21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셨습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요. 세상에서의 일상의 삶과 예배의 삶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같은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일상의 삶이 예배의 삶일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그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 영상 설교 127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중에서 ]

 

감사합니다

 

MD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