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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양육 20: 섬김

마가복음 10:45 말씀으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라고 합니다. ‘섬기다’는 의미의 영어는 service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worship 또는 service 라고 합니다. ‘worship service’, ‘church service’, ‘service’ 라고 합니다. ‘예배’ 인데 ‘서비스’(service)가 붙는 것은 ‘봉사’ 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비스’(service)는 영어권 나라에서는 더더욱 광범위하게 쓰이는 용어입니다. 그렇게 보면 ‘서비스 정신’ 은 기독교 정신이며, 모든 삶에 적용되는 가치관일 것입니다.

 

‘섬기다’의 히브리어 ‘아바드 avodah’는 ‘섬기다 봉사하다 수행하다’의 뜻으로 ‘일’ ‘예배’ ‘봉사’의 의미를 갖습니다. 영어 의미의 service 인 것입니다. 즉, 예배를 섬기고 시중들고 일을 수행하는 것이 하나의 같은 개념이었습니다. 영어로 모두가 service 입니다. 예배’(service)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상의 ‘봉사’(service)이며, ‘봉사’(service)는 세상 속에서 몸으로 드리는 최고의 ‘예배’(service)인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일하는 것(service)도 예배(service)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세상의 일과 교회의 예배가 다른 삶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service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최상의 봉사로 예배하고, 세상 속에서 최고의 예배로 이웃을 섬기며 나눌 때, 세상 사람은 그런 우리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배와 일을 동일한 개념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온전한 예배는 이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두 단어를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의 ‘일’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제물이라는 말이며, 또한 일하는 터전이 하나님의 장소라는 의미입니다.

 

태초부터 예배와 일은 하나였습니다. 일과 예배, 이 두 행위가 모두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일이, 일하는 것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면, 예배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두 삶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의 하는 모든 일이 믿음에서 나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해진다면, 일과 예배를 구분하고, 일의 귀천을 구분하려는 이원론적 태도는 불신앙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하여야 합니다. 구별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탈되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삶과 예배의 삶이 분리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삶 안에 예배의 삶이 함께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피조세계 즉,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는 내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속한 것이다'라고 외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구별된 삶이지만 또한 세상과 분리되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섬김과 봉사와 그리스도인의 섬김과 봉사가 무엇이 다를까요?

우리의 섬김과 봉사가 주님의 사랑 안에서, 그리고 주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세상적 섬김과 봉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섬기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섬김과 봉사 안에 예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섬김과 봉사 안에 복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다운 주를 섬기는 것입니다.

 

섬김과 비슷한 용어로 ‘대접’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로마서 12:13에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라고 하셨고 디도서1:8에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하였습니다. 이는 감독 즉 목사 장로의 직분자들이 갖추어야할 덕목으로 앞의 7절부터 9절에 이르러 하신 말씀입니다. 야고보서1:27에서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 정결하고 경건한 것이라 하였으며 디모데전서5:10에서는 선한 행실의 증거 중에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과 성도들의 발을 씻기는 것 그리고 환난 당한 자를 돌보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접하다’의 영어 표현은 hospitality로, 이의 연관어로는 호스피스, 호텔 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본인이 나그네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35-36에서,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합니다. 또한 구약 성경의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하십니다. 사도행전 7:6에서,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성경 역사적으로는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나 핍박 등으로 인해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사람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교회의 당면 문제였을 것입니다. 나그네란 여행 중인 사람 또는 딴 곳에 임시로 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는 토착민도 아니며 혈연관계도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기업의 땅도 없으며 법적 권리도 없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일 것입니다. 빌립보서 2:4에,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 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자기를 돌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다른 사람의 들도 돌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대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나그네의 영적 의미로는 본향은 하늘나라에 두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을 칭합니다. 우리 모두가 나그네입니다. 하늘나라가 본향인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입니다. 빌립보서 3:20a에서,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는 그 분처럼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그네는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는 삶을 삽니다. 나그네의 삶은 불필요한 것, 가치없는 것들은 모두 버리고 꼭 필요한 것, 가치있는 것 만을 함께 하며 사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한 나그네가 세상 것에 소망을 두겠습니까? 나그네는 하나님께 소망을 둡니다. 교회에 오는 나그네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입니다. 이들을 사랑으로 대접하는 것이 선한 행실의 증거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증거인 것입니다.

 

여러분, 섬김이 어려운 것은 섬김 자체가 아니라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섬기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선을 베푸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섬김을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섬기는 것이 더욱 어렵습니다. 봉사활동을 하고 나서 자랑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사도 바울도 골로새서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역설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나그네를 진심과 전심으로 대접하는 참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MD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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