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타협과 협상
대화 중에도 타협과 협상이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대화가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나의 입장을 이해시키고 나의 목적 나의 뜻을 달성하기 위한 대화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의미없는 '수다'라 할지라도 나의 뜻과 목적이 있지요. 자식자랑 손주자랑의 뜻이 있는 것이죠.
타협과 협상 대화의 진수는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심하여 하나님께서 확인하려 하시니, 아브라함이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하며 의인 50명에서 시작하여 10 명이라도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대화로 이어집니다. 창세기 18장에 기록되었습니다.
모세와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모세를 부르고 세우는데 오가는 대화입니다 출애굽기 3장과 4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여러분도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모세를 설득하십니다]
모세: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하나님: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모세: ‘오 주여 보낼 만 한 자를 보내소서’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모세는 하나님을 따릅니다]
이 대화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피하기 위하여 이런 저런 핑계를 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모든 핑계거리를 무력케하여도 다른 소리를 하길래 결국 하나님께서는 노하시게 됩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대화의 유형 2번에 대한 사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얘기 했는데 모세는 결국 딴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대화는 공통점이 있지만 다른 점도 있습니다. 공통점은 하나님과 대화자, 즉 아브라함과 모세 간의 협의점을 찾는 것이고, 다른 점은 아브라함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돔을 위한 것이며, 모세는 자기 자신에 대한 것입니다. 결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얘기를 들어 주셨고 모세에게는 노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입장이 아니고, 모세는 자기 생각만 한 것입니다. 모세는 40년간 살인자로 피신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불러 애굽 땅의 동족을 구하라고 하니, 엄두가 안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고집만 부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 대화 상대 중에 누군가는 양보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대화에서 하나님이 양보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와의 대화에서 하나님은 양보하지 않으셨습니다.
대화의 3요소가 경청, 겸손, 반응 입니다.
경청이라 함은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은 물론이며, 그 내면에 깔려 있는 동기(動機)나 정서에 귀를 기울여 듣고 이해된 바를 상대방에게 피드백(feedback)하여 주는 것을 말한다. 1단계는 귀로 듣는 것이며 2단계는 눈으로 듣는 것, 3단계는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내 욕심 내 고집을 부리면 상대방의 말이 귀에, 마음에 들어 오지가 않습니다. 대화는 상대방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듣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상대방의 말에 반응해 주어야 합니다. 반응한다는 것은 공감의 의사표현입니다. 아무리 자식자랑 손주자랑 하더라도 들어주고 공감표시를 하여 주셔야 상대방도 내 자랑을 들어 줍니다. 그래야 즐거운 행복한 수다가 됩니다.
한가지 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21장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생업으로 돌아가 고기잡이를 하던 베드로에게 찾아 가신 것입니다. 조반을 먹은 후 대화 장면입니다.
하나님: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하나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하나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차례에 걸쳐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마지막 세 번째 대답에 앞서 근심하였다고 합니다. 왜 근심하였나요. 하나님께서 질문하실 때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아가페’ 사랑으로 질문하셨는데 베드로는 ‘필레오’ 사랑으로 대답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세 번째 질문하실 때는 아가페가 아닌 필레오 사랑으로 질문하신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근심한 것 입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대답했는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마음을 알아채신 것입니다. 마음을 들킨 베드로가 근심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적인 사랑 즉 네가 나를 주님을 믿고 사랑하느냐 하고 질문하신 것인데 베드로는 주님의 신적인 믿음이 아닌 형제적 사랑 즉 인간적 사랑으로 대답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 베드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양보하시는 것입니다. 필레오 사랑이라도 좋으니 내 양을 먹이고 내 양을 치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의 솔직한 표현에 예수님은 베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 솔직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용하여 쓰시는 주님이십니다. 필요할 때 능력을 더하여 주시리라 믿습니다.
[다시듣는 설교 12-3 '하나님과 대화법'] 중에서
감사합니다
MD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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