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1:29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한다. 예수님은 평소 자기가 받을 고난과 제자들이 체험하여야 할 것들에 관하여 말씀하심으로 제자들이 고난을 준비하도록 하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마태복음 16:21절에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서 나타내시니’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예수님께 다음 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라고 하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냉혹하게 베드로를 꾸중하셨다. 예수님께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어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라고 하셨다.
제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 박해를 받았다. 베드로와 요한은 감옥에 들어갔고 매도 맞았다. 스테반은 돌에 맞아 죽었다. 야고보는 창에 찔려 죽었다. 바울은 39회의 유대 태형을 다섯 번이나 받았으며, 몽둥이로 맞은 것은 세 번, 그리고 한 번 돌에 맞았다고 하였다. 이 외에도 거의 대부분의 사도들이 순교를 당하였다.
사도행전 8:1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마태복음 10: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이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우리는 너무나 자주 서로가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실망을 준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작 죄인들의 무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용서는 항상 고통스러운 것이다. 용서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용서의 대가는 죽음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으로 커서 자기에게 반역하는 사람들까지도 구원하려고 항상 손을 뻗치고 계신다.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사랑을 나누어 주려고 애쓰신다. 하지만 사랑은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강제로 시키는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은 당신을 외면하고 또 우리끼리 점점 멀어지는 것을 그저 보고만 계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난은 제자도와 떨어질 수 없는 요소이다.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는 ‘기쁨과 슬픔은 서로 떼어낼 수 없을 만큼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심오하게 역사하실 때는 우리가 고난이 한 가운데 있을 때이다.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주의 속에서 십여 년 동안 고통 당했던 어느 그리스도인은 ‘우리는 기도해야만 합니다. 박해받지 않게 해 달라고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박해당할 만큼 가치있는 존재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박해를 통하여 우리에게 오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다.
감사합니다
MDMS
'Messag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강해 5:6-8 왜 죽으셔야만 했나? (0) | 2025.03.08 |
---|---|
로마서 강해 5: 6-8 아들을 보내시는 사랑 (0) | 2025.03.01 |
로마서 강해 5:5 사랑과 구원 (0) | 2025.02.22 |
로마서5:5 성령 사역 (0) | 2025.02.15 |
로마서 강해 5:5 성령의 공작 (0) | 2025.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