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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장 Ch. 14-1 은혜 아래

로마서 3장 Ch. 14-1  은혜 아래 

 

로마서 3:9-20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성경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각자 죄 아래에 있든지 은혜 아래에 있든지 두 입장 중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여기서 ‘죄 아래 있다’와 ‘율법 아래 있다’는 같은 의미입니다. 같은 말입니다. 즉 근본적인 상태는 ‘죄 아래 있는 상태’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이 두 큰 범주 속에서 예외를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를 달리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속했느냐, 이 세상의 나라에 속했느냐’의 둘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하여야 할 것은 선한 삶을 영위하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우 선한 삶을 영위하면서도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영역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 아래 사단의 영역과 지배 아래 있으면서 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명심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 아래 태어났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전제입니다. 아담이 죄책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본성적으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서 ‘다 죄 아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이것을 입증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강해 설명이 본문의 10-18절입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사도 바울은 복음을 이야기 하면서 죄의 더러움도 함께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 전도란 복음이 무엇을 했느냐에 대한 적극적인 진술만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라고 촉구하는 일부터 하지 않는 복음 전도는 비성경적입니다. 죄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고 그리스도에게 나올 수 있다 든지 회개는 나중에 하고 죄에 대하서는 차차 배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의 임무는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죄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 죄에서 벗어나서 ‘은혜 아래’ 있게 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MD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