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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

포도원 품꾼

제목: 포도원 품꾼

 

말씀: 마태복음 20: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오늘 본문의 포도원 품꾼 비유 말씀은 4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에만 기록되었습니다. 즉, 유대 공동체에게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1절에서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는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 자신은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 같다고 하신 것입니다. 본 비유는 집 주인의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아야 합니다.

 

비유 내용으로, 포도원 주인은 아침 일찍 품꾼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냅니다. 그리고 제 삼시에, 또 다시 제 육시, 제 구시 그리고 제 십일시 총 5차례에 걸쳐 품꾼을 포도밭에 보냅니다. 그런데 통상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새벽 인력 시장에서는 자동차가 와서 하는 일과 일당 얼마에 몇 명하면서 사람을 태워 갑니다. 그런데 오늘의 포도원은 종을 시키지도 않고 주인이 직접 밖에 나와서 그것도 5번이나 직접 품꾼을 데려 갑니다. 여기서 주인의 심성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7절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으로 들어가라 하니라”하십니다. 제 십일시, 지금의 오후 다섯 시 경입니다. 그때까지도 일자리를 못 구하고 남아있는 일꾼을 어떤 일꾼일까요? 생각하건대 약하고 힘도 제대로 못 쓸 것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개의치 않습니다. 다섯 차례나 직접 나와서 일꾼들을 모두 데려 갑니다. 다른 사람한테 시키지 않고 직접 베푸시는 은혜의 모습을 봅니다. 이러한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두번째로 품삯을 보겠습니다. 가정 먼저 일을 하게 한 품꾼들에게 포도원 주인은 한 데나리온을 약속합니다(2절). 그런데 그 이후에 데려온 품꾼들에게는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4절)”하는 것입니다. ‘적정하게’ ‘합당하게’가 아니라 ‘상당하게’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I will pay you whatever is right’로 기록하였습니다. 헬라어로는 ‘다카이오스’로 ‘정당하게’ ‘정의롭게’ ‘의롭게’ 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이 단어는 ‘하나님의 의’(디카이오수네)라는 말을 쓸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로마서 3:10의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와 갈라디아서 3:11b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에서의 ‘의인’으로 사용된 언어입니다. 아마도 품꾼들도 자신이 얼마 받게 될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품꾼들이 먼저 온 자나 나중 온 자나, 새벽부터 일한 자나 오후 다섯 시부터 일한 자나 모두 똑 같이 한 데니리온 씩 받았습니다(10절). 여러분이 포도원 주인이라면 이렇게 하시겠습니까? 누구도 이렇게는 안 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관점에서는 절대로 공정한 것이 아니고 정의롭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그리 하십니다.

 

여러분 말씀 중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고 질문합니다 (마18:1). 이에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를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22:24에서도 제자들이 누가 크냐하는 다툼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30a절에서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모두에게 같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자기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오직 주신 은혜에 감사함 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앞서 1장 30절에서 “그런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하시고 바로 오늘의 비유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15:11-32)도 같은 맥락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는 누가 크냐 작냐, 누가 먼저나 나중이냐가 따로 없습니다. 함께 합니다. 사랑으로 함께 합니다. 은혜로 함께 합니다.

마지막으로 품삯을 주는데 먼저 온 자부터 주는 것이 아니라 나중 온 자부터 주십니다 (8절). 주인은 청지기에게 “나중 온 사람부터” 삯을 주라고 명령합니다. 순서는 주인이 정합니다. 아마도 청지기에서 그냥 맡겼으면 먼저 온 사람부터 주어 보냈을 것입니다. 청지기는 품꾼이 일한 시간만큼 계산하여 먼저 온 사람부터 삯을 주고 보냈을 것입니다. 주인은 의도적으로 순서를 뒤바꾸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오후 다섯 시에 온 품꾼도 한 데나리온 씩 주게 한 것입니다. 왜 주인은 일을 자초하는 것일까요? 모든 것의 주관자는 청지기가 아니라 주인입니다. 내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모든 권한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MD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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