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구원의 자유함
갈라디아서2: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바울은 네차례에 걸쳐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번 두번째 방문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방인 개종자들의 행동과 관련된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번에 주님께서 바울의 마음을 감동케하여 계시대로 방문을 하게 하셨고, 이방인 개종자 디도와 바나바와 함께 갔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의 유력자들을 만나서 유대인의 의식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였습니다. 7-10에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논의 전에 문제삼은 것이 할례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의 앞절에서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하지 아니하였으니’라고 기록합니다. 당시 헬라인이면 당연히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억지로 디도가 할례를 받게 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할례문제로 바울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은 거짓 형제들이었으며 그들은 교회로 몰래 들어와 디도에게 할례를 받도록 압력을 가하였던 것입니다. 거짓 형제들은 예수그리스도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바울과 다르게, 율법도 지켜야 한다,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얘기를 전하는 것입니다. 공의회의 결과가 갈라디아와 안디옥 교회에 소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에는 계속해서 교인들을 미혹하는 유대주의자들이 존재했으며 이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유케 된 성도들을 다시 율법 아래로 끌어들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신자인 것처럼 가장하여 열심은 있으나 실제로는 복음을 거부하고 교회를 파괴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갈라디아 교회의 형편 가운데서 디도가 할례 받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은 자유 얻은 자로 하여금 자유를 잃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이방 선교를 하는 디도가 할례를 받은 상태가 좋을까요? 안 받은 상태가 좋을까요? 이방인들에게 할례 자체가 의미없음을 말하려는데, 예수님이 임하시기 때문에 율법에 매이는 것이 의미없음을 말하려는데 어느 편이 좋을 것 같습니까?
즉, 바울은 구원이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할례 등의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님을 역설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디도에게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않았던 이유가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들어온 목적은 사도 바울과 성도들이 가진 자유를 엿보고 그들을 율법의 종으로 삼으려고 함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자유’라는 사도 바울의 표현은 하나님의 복음의 핵심적 내용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 자유는 가깝게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이며 할례의 규례와 의무로부터의 자유인 것입니다.
복음 안에 있는 자유는 방종에 빠지게 하는 자유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행하게 하는 자유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후에도 여전히 우상숭배하지 말아야 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고 거짓 증거하지 말고 탐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덕법들을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義) 안에서 기쁨과 자원함으로 지키는 것이지, 의를 이루기 위해 공포와 두려움 가운데 무거운 짐을 진 심정으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8장에서, 우상숭배하는데 사용하였던 고기를 먹느냐 안 먹느냐는 것은, 우상숭배하는 사람들에게 고기는 우상숭배의 제물이지만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그냥 고기에 불과할 따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9절에서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합니다. 먹고 안먹고는 나의 자유이지만 그로 인하여 믿음이 약한 자가 넘어지지 않게 하라고 합니다.
좀 더 우리 주변의 것으로 설명드리면, 담배피는 문제를 얘기해 볼까요? 그리스도인이 담배를 피워도 되느냐 안된다는 것도 자유입니다. 그러나 피움의 자유함으로 믿음이 약한 자를 넘어지게 하여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자유함은 율법을 뛰어넘는 자유함인 것입니다. 율법을 뛰어 넘는다고 해서 방종함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거룩함을 가는 자유함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MD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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